여행단상
2015,01,06
여행 단상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친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을 확인 하게 되었다. 국민소득도 1만 불에 가까워지니까 경제적으로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이듬해 일반 국민들에게도 여권을 발급 받아 누구나 자유로이 외국여행을 할 수 있도록 빗장을 풀어 주었다. 이른바 여행 자유화 조치이다. 그 전 까지는 돈이 있더라도 일반인들이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막혔던 봇물이 터지니 가까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에 나섰다.
나는 1996년에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인솔자가 있는 패케이지 해외여행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떠나는 동남아시아가 아니고 서부 유럽이었다. 서양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들의 선조들은 어떤 문화유산을 남겼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의 비행시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여 승무원들이 때맞추어 제공하는 기내식이며 무료의 음료 서비스에 포도주를 여러 잔 마신 기억도 있다. 무료이면 무엇이든 좋아 하잖아?
서울역이 제일 큰 줄만 안 시골뜨기에게는 당시의 김포공항의 활주로 길이에 감탄을 했고 처음 내린 영국 히드로 국제공항의 입국절차도 첫 경험이라서 신기하기만 했다.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 브뤼셀,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리히텐슈타인을 거쳐서 이탈리아의 피렌체까지 점을 찍으며 바쁘게 다녔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솔자가 보여 주는 것만 볼 뿐이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30 여명이 옮겨 다니는 단체 관광이었다.
피렌체에 있는 두오모 성당은 중세의 아름다운 건축물의 백미였다. 아름다움에 반했고 규모에 넋을 빼앗겼다. 구경을 마치고 성당 밖으로 나오는데 깃발을 든 가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반하여 사진을 몇 장 찍는 사이에 일행을 놓친 것이다.
만약 일행을 놓치게 되면 찾느라고 돌아다니지 말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인솔자가 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하기에 성당 문 앞에서 기다렸다. 10 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우리 내외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도 찾으러 오겠지 좀 더 기다려 보자.
그렇게 기다리기를 1시간이 지났다.
큰일이네. 어떻게 하지? 말이 통하는 국내도 아니고 여기는 외국이잖아. 해는 저물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때는 요즘처럼 휴대폰이 보급된 시대가 아니었다.
그때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인쇄된 여행일정표가 손에 잡혔다. 얼른 펼쳐 보았다. 오늘은 로마에 도착해서 **호텔에 숙박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가지? 아내는 안절부절 이다.
거리가 상당히 멀기는 하지만 '택시를 대절해서 가면 되겠지'라며 아내를 안심시키기는 했지만 속으로 염려는 되었다.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법을 찾고 있는데 저 멀리서 우리와 다른 여행사의 한국 단체 여행팀이 보였다. 도움을 청해야겠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자기네도 그 근처에 가니 자기네 팀 버스를 타란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로마까지 가는 5시간 동안을 다른 한국 팀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로마의 호텔에서 우리 팀을 다시 만났다. 여기까지 데려다 줘서 감사하다며 팁을 20달러 주었다.
우리 팀의 인솔자에게 따졌다.
“왜 우리 내외를 찾지도 않고 떠났느냐?”
“우리가 알았을 때는 고속도로를 진입한 후였습니다. 어떻게든 찾아오실 수 있는 분들이라 생각되어 그냥 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행 중에 교수로 정년퇴직 후 다소 불편한 몸으로 여행길에 나선 나이가 많은 부부가 있었다. 그들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더니, 우리 내외에게 소흘 하였나 보다.
그 후로 생각해 봤다.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내가 머물고 싶은 곳에서 휴식하고, 즐겨 사진도 찍으면서 다니는 것이 여행일 텐데...
방법이 없을까? 그 후 자유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2003년 겨울에 한차례의 단체 배낭여행을 통하여 중부 인도를 한 달 동안 다니면서 자유여행의 요령을 익혔다. 그 후 나 혼자 베트남을 한 달간 여행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 혼자서도 세계 어느 곳이든 헤집고 다니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배낭여행이라고 하지만, 나는 작은 책가방을 하나 들고 떠나니까 자유여행이라고 한다.
올해도 이래저래 해외에서만 90 여일을 여행 했다.
지금도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혼자 여행을 즐기는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 혼자 그렇게 다니면 위험 하지 않느냐?”
나는 그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 우리나라의 서울 뒷골목을, 그것도 밤늦게 혼자서 다니면 위험하냐? 아니냐?”
적당히 긴장하면서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지구촌 어디든 아무 문제없다.
또 많이 듣는 질문은 “한 달 이상을 어떻게 다닐 수 있느냐?” 이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떠나야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떠나야하는 이유로 떠나야 한다.
사람은 어떤 일에 우선을 두느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 된다. 여행에 최우선을 두면 떠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염려가 쌓여 사흘도 집을 못 떠날 것이다
다음은 경비가 많이 들 텐데 어떻게 감당 하느냐? 는 이야기도 듣는다.
자유여행 하는데 돈을 많이 쓸 수도 있고, 적은 돈으로 즐길 수도 있다. 돈을 많이 쓰면 몸이 조금 더 편할 수는 있다.
이것은 본인의 선택사항이다. 나는 적은 돈을 쓰면서도 불편해 하지 않고 즐겁게 다닌다.
예비군 복을 입으면 흙먼지 묻는 것 아랑곳 하지 않고 아무 곳이나 서슴없이 덥석 앉게 되듯이 배낭 메고 떠나면 싼 숙소, 길거리 음식, 로컬 버스에 익숙해지고 때로는 불편함도 즐길 줄 알게 된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자연과 훌륭한 문화유산은 고급 호텔에 숙박한 여행자에게만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을 여행 하려면 가져가야 할 물건들이 많을 텐데...?
여행지의 숙소에서 우리나라의 젊은 여행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내 여행가방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자기들 보조 가방 정도 밖에 안 되니까. 내 이야기를 듣고 내 가방을 본 젊은 여행자들이 자기 배낭에 든 짐을 꺼내 도로 한국으로 부치는 경우도 있었다. 있으면 편리하겠지만 없어도 아주 많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으면 가져가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듯이 여행에 꼭 필요한 물건도 그리 많지는 않다. 어느 여행지이든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꼭 필요한 물건은 있기 마련이다. 욕심이 여행자를 무겁게 한다. 가방이 가벼워야 여행이 즐겁다.
세상을 사는 것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채우고 채워도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은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에서 행복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인생길에서 필요 이상의 짐을 많이 지고 무거워 하지 않는지 뒤 돌아 볼 일이다.
욕심이 인생을 무겁게 한다. 적당한 짐을 지고 살아야 인생이 즐겁다.
여행의 일정을 어떻게 계획하느냐?
자유여행 초창기 때는 일정을 비교적 상세히 계획하고 다녔으나 지금은 큰 윤곽만 계획하고 자세한 일정은 정하지 않고 떠난다.
여행은 일상으로 부터의 탈출이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자세한 일정과 갈 곳을 정하고 찾아다닌다면 그것 또한 구속이다.
가이드북에 있는 명소를 다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여행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숙제가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여행은 큰 줄기만 생각하고 떠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여행이다. 온전하게 머리를 비우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채울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여행 중에 계획 없이 만나는 사람이 반갑고 생각하지도 않은 풍경이 나타나면 그때는 감동이 더 크다.
진정 자유여행의 고수는 떠나는 날과 돌아오는 날만 계획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떠나는 날만 정하고 간다고도 한다. 나는 아직 그 만큼은 아니다.
여행을 통하여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이 때로는 책상에 앉아서 한 아름의 책을 읽는 것 보다 많을 수도 있다. 여행은 소비이기 전에 투자이기도 하다. 특히 젊은이들은 잘 사는 나라인 선진국을 여행하라고 권하고 싶다. 큰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스케일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자이면 먹 거리가 좋은 가까운 곳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의 블로그 부제가 이렇다.
‘젊은이들은 배낭여행으로 세상을 넓히고, 은퇴자는 자유여행으로 세상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