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야기

옥산서원과 독락당:2013,09,24

무숙자 2013. 9. 25. 08:58

 

경주 송화도서관에서는

문화체육부에서 주관하는  '길 위의 인문학' 사업 공모에 선정되어서

'조철제 선생님과 함께하는 경주 이야기' 란 주제로

옥산서원과 양동마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강의와  현장 탐방이 이루어진 행사가 있었습니다.

먼저 경주 안강에 위한  옥산서원부터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사적 154호이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옥산서원(玉山書院)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선생을 제향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선조 5년(1572년)에 그의 손자와 제자들의 뜻에 따라 경주 부윤 이재민이 설립하였으며, 

그후(1574년)에 임금이 서원  이름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 부근에 자색의 옥이 난다는 자옥산(紫玉山)이 있는데 거기서 옥산이란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성리학은 그 후 '퇴계 이황'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옥산서원'이란 현판이  강당의 밖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강당 안에도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현판은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아계 이산혜'의 글씨라고 합니다. 

 

 

 

 

 

이날은 먼저  '회재 이언적'의 철학에 대한 강의 (강사;조철제 선생님) 수강 후에  

자동차로 이동하여 옥산 서원(玉山書院)과  독락당( 獨樂堂) 탐방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주 시내에서  차로 30 여분 가서 내려 서원을 향해 걸어 갑니다.

 

 

 

 

주변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보행길 따라 이어져 있으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조금만 걸으면 옥산서원 입구에 이릅니다.

 

 

 

 

옥산서원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입니다.

 

 

 

 

 

입구의 종합 안내판

 

 

 

 

외삼문인 역락문

 서원을 찾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라는 뜻의 '역락문'

서원에 들어가는 첫 문인데,가운데  문은 임금이나 신들이 드나드는 문이니,

사람들은  오른쪽에 열린 문으로 출입하는것이라고 합니다.

 

 

 

 

역락문을 들면,바깥 계곡의 맑은 물을 끌어 들여 흐르게  합니다.

 

 

 

 

 

구인당

아래사진의 '무변루'를 지나면 마당이 나오고,  정면에 유생들을 가르쳤는 강당이 보입니다.

이날은 이곳의  문화해설사와  조철제 선생님의  설명이 있었구요.

서원은 교육과 제사의 기능을 하는 곳이라고 보면 간단한 설명이 되겠네요.

 

서당은 오늘날의 초등학교,향교는 중고등학교, 성균관(지방은 서원)은 대학에 해당된다고 하면 대충은 맞습니다.

전국에는 천여개의 서원이 있었고,  영남 3대 사원은 옥산서원(회재,이언적), 도산서원(퇴계,이황), 덕천서원(남명,조식) 이랍니다.

 

 

 

 

 

서원에 들어갈려면 역락문을 지나서 이곳의 루를 지나면 "옥산서원"  현판이 보이는 강당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강당과 마주 보는 루인데 주변을 살필 수 있도록 개방 되어 있지 않고,막혀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래서 이름도 무변루 인데 이 이유는 아직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루각은 바깥 경치를 살필 수 있도록 문이 없거나 개방이 쉽도록  되어있습니다.

 

 

 

무변루의 옆에 위치한 서재인 암수재(오른쪽건물)

이곳은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기숙사 였다고 합니다.

 

 

 

 

무변루 옆의 동재인  민구재(왼쪽건물)

 

그러니까 서원의 강당과 마주 보는 무변루, 양쪽에 암수재와 민구재가 있으니 완전한 ㅁ 자  형태의 건물 입니다.

가운데 마당이 있습니다.

 

 

 

 

 

옥산서원이란 현판은

1574년 사액 후 1839년 '구인당'의  화재로 소실되자, 현종의 명에 의해 추사 김정희가 다시  쓴 편액이라고 합니다.

밖에서 보이는 현판 입니다.

 

 

 

 

 

서원의 강당인 구인당 현액은 한석봉의 글씨 입니다.

옥산서원에서는  명필가의 글씨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질'仁' 이 들어간 '구인각'은

이언적의 사상에서 '인'의 덕목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이 날 참여한 50 여명은 조철제 선생님의 강의로 회재 이언적의 사상과 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정면에서 본 암수재

 

 

 

 

바깥의 경치를 살필 수 없도록 문이 막혀 있는 무변루를 다시 나와서 독락당으로 가려고 서원을 나왔습니다.

 

 

 

 

서원의 주변에는 맑은 계곡물이 항상 흐르고 있습니다.

 건너편으로 갈려면 길지는 않지만   외나무 다리를 조심해서  지나야 하는데

넓지 않고 한사람이 지날 수 있도록 좁게  만든 뜻은 항상 조심하고 겸손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서원을 나와서 주변 계곡의 경치를 보기 위해서,

또는 회재 이언적의 별장이자 서재였던 독락당으로 가려면 좁은 이 외나무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700 여m 가야 됩니다.

 

 

 

 

최근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계곡에 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르지 않고 흐릅니다.

 

 

 

 

작은 규모의 용추폭포도 있구요.

 

 

 

 

외나무 다리를 건너서 본 옥산서원 입구의 전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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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보물 413호로 지정된  '회재' 선생의 별장인 독락당(일명 옥산정사)입니다.

이 건물은 옥산서원 뒤편 북쪽으로 700여 m 거리에 있고

회재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었으며, 만년의 대부분을 여기서 보냈다고 합니다.

서원과 함께 꼭 둘러 보아야 할 곳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독락당

 독락당이라는 현판도 보이고, 옥산정사라고도 합니다.

지금 이 건물에는 회재선생의 종손이 자긍심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독락당 건물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서

대청에서 살창을 통해 앞 계곡의 냇물과 건너 산의 수목을  바라보게 만들어 졌습니다.

 

 

 

 

 

계곡 쪽에  위치한 정자인 '계정'

 

 

 

 

계정에서  바라보면  건너 산의 온갖 나무들이 보이는 자연정원 입니다.

 

 

 

 

 아래의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구요.

 

 

 

 

유물과 서원에 관계되는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는 유물관

회재 선생의 종손 되시는 분께서 직접 유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보통때는 개방도 설명도 쉽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500여 점이나 되는 방대한 유물 중에는 보물로 지정된것도 많았습니다.

 

 

 

 

 

500 여년 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유물과 자료가 매우 잘 보존 된데는 후손들의 노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방대한 유물에 비해서

공간이 협소하여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장산서원의 현판이 보관되어 있는데, 장산서원은 회재의 아들인 '잠계 이전인'을 보향하는 서원으로

2006년에 복원 되었다고 합니다. 독락당에서 700여m 올라가면 장산서원이 있습니다.

회재의 아들인 '잠계 이전인'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 후  회재가 더욱 바르게 알려졌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서원과 독락당을 둘러 보고 하루 동안의 답사를 마쳤습니다.

마침 벼가 무르익는 가을이라 넓은 안강들의 황금 들판을  바라 보면서 시내로 되돌아 왔답니다.

유익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되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