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29
우이(우리)~~~ 풍선 불까?
옛 어른들 말씀이 틀린것이 하나도 없다. 오랜 생활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씀이니까 그런가 보다.
‘자식은 두벌 새끼가 더 예쁘다.’ 라는 말씀이 또한 그러하다.
자주 보지는 못해도 서울에 사는 두 손녀를 떠올릴때면 우리 내외는 그저 웃음이 나올뿐 이다.
나는 26살에 아들을 얻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내에게 미안하다.
출산일이 가까워지자 아내는 친정에 갔다. 친정 어머니에게 산파일을 맡길 셈이었다.
요즘이야 출산할때면 병원에 가겠지만 그시절은 혹 병원에 가기도 했겠지만 그렇게도 많이 했다.
그때 나는 아내 곁에 있지를 못했다. 학교의 일로 타지에 출장을 갔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으면 아내의 출산이 우선이었을 터이지만 그땐 그것도 사사로운 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출산 예정일날 저녁 무렵 궁금하여 전화를 내었다. 아들을 출산 했단다.
요즘처럼 성별을 미리 알지도 못하고 낳아 봐야 아들인지 딸인지 알기 때문에 더 극적이다.
아들이라니 무척 기뻤다. 일을 얼른 끝내고 버스를 탔다. 영천을 거쳐 청송까지는 5시간이나 걸렸다.
처가에 들어서니 장모님이 먼저 맞아 주셨고, 방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핏기라고는 없는 아내의 창백한 모습이 우선 눈에 띄었다.
무척 안스러웠다. 아이는 아기 이불에 싸서 옆에 뉘어 있었다.
옆에서 아기를 돌보고 있던 처형이
“황서방! 아들 한번 안아 보세요.” 하면서 아이를 안겨 주는데 어찌나 쑥스럽던지 어색하게 엉거주춤 아들을 안아본 기억이 난다.
이목구비가 또렷한게 사내아이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극적인 표현을 할 줄 모르는 부끄럼 많은 아빠였다.
요즘 같으면 산모 옆에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면서 의사의 도움으로 아빠가 탯줄을 직접 자르며 출산을 축하 한다던데...
너무도 뭘 몰랐다. 그 시절에는 어른들 앞에서 지나치게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것이 젊은이들의 덕목이기도 했다.
둘째인 딸은 포항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났고 쑥스러움 없이 자연스레 안아 보기도 했었다.
그때 태어난 아들이 결혼하여 딸을 둘 낳았으니 세월이 또한 많이 흘렀는가 보다.
큰 손녀는 다가오는 3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할 만큼 많이 컸고 둘째 손녀는 두 돌이 지나 올해 봄부터 어린이 집에 다닌다.
둘째 손녀는 아직은 어미 품에서 있어야 될 어린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어린이 집에 보내는 이유는 내년에 어미가 학교에 출근을 하게 될 것에 대비해서 미리 훈련하는 것이다.
오전에는 어린이 집에서 생활하다가 오후에는 어미 품으로 다시 데리고 와서 단계적으로 적응을 시키기 위해서 라고 한다.
제 키 만큼이나 큰 가방을 메고, 스스로 양말과 신발을 챙겨 신고 집을 나서는 것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 안스럽기도 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도록 자립심을 길러주는 어린이 집의 교육방침이 마음에 든다.
하루는 큰 손녀의 유치원에서 실시하는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아들 내외가 저녁 늦게 집에 온다고 하여 작은 손녀
예원이를 아내가 늦은 시간까지 돌봐 주기로 했다.
어미와 오랜시간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라서 애가 쓰였는지 아들 내외는 이것 저것을 주문을 해 놓고 갔다.
아내는 목을 수술한지 한달만에 수술경과를 체크하기 위해서 수술한 서울대병원에서의 진료를 위해 하루전 아들집을 갔는데 마침 사정이 이러해서 손녀를 돌보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목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어 목 보호대를 한 상태이다.
아내는 처음에는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이어서 입이 마르도록 동화 구연을 했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동화구연에 재미있게 반응했는데 늦은 밤시간이 되어도 어미가 보이지 않자 칭얼댈 기미가 보인다.
활동량이 워낙 많은 아이이다 보니 잠시도 그냥 혼자서 조용히 놀지를 않는다.
손녀 예원이에게 어미 생각을 잊게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이벤트를 해야 한다. 아내는 준비해 놓은 풍선을 꺼내어서 풍선불기 놀이를 시작했다.
바람을 잔뜩 불어서 공중에서 놓으니 바람이 빠지면서 풍선이 이리 저리 춤을 춘다.
아이는 재미가 있는지 깔깔 넘어갈 정도로 좋아한다. 예원이와 할머니의 풍선놀이는 엄마를 잊는 명약이었다.
얼마 후에 아들 내외는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예원이는 다시 어미 품으로 안겼다.
할머니와 활동량이 많아서인지 예원이는 그날 밤에 잘 잤다.
이튿날도 할머니는 손녀 예원이와 놀아 주어야 했다.
대뜸 할머니에게
“ 할마니! 풍선 불어 줘! “
사뭇 명령이다. 어제 할머니와의 풍선놀이가 재미가 있었나 보다.
그렇게 또 한참을 놀아주니 할머니는 지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 돌보는 일이 일 하는것 보다 힘이 더 드는게 사실이다.
“ 할머니는 지금 목이 너무 아파요. ”
할머니가 목이 아파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번에는 표정을 살피더니 오리 걸음으로 뒤뚱거리면서 걸어와서 하는 말이
“ 할마니이 ~~~ 우이(우리)~~~풍선 불까?”
얼굴 표정이나 말투가 할머니의 표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무척 귀엽다. 우리라는 발음이 우이~~~ 로 시작하는것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아이 답다. '우리'라는 개념도 쉽지 않을 텐데...
그 후 예원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우리 내외의 유행어는 “우이~~~ 풍선 불까?” 버전으로 “우이~~~ ** 할까?” 가 되었다.
손녀들 생각하면 항상 즐겁고 웃음이 나온다.
첫벌 새끼는 몰라서 그랬으니 '두벌 새끼가 더 귀엽다' 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틀리지 않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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