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내 나이가 경계에 닿았네.

무숙자 2015. 1. 18. 14:30

2011, 05,08

 

내 나이가 경계에 닿았네.

 

어버이날 맞아 경로잔치가 열리니 어른들께서는 많이 참석하시라고 이장이 마을 확성기로 방송을 한다. 잔치이니 만큼 하객이 많아야 한다. 우리 집에서 경로잔치가 열리는 초등학교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어머니를 차에 태워서 모시고 갔다. 경로잔치가 끝나면 다시 모시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에 도착하니 마을 어른들이 여럿 오셔서 먼저 자리를 잡고 계셨다.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느니 기다렸다가 끝나면 어머니 모시고 같이 가라고 마을 어른 들께서 말씀을 하신다. 나는 나이든 노인네가 아닌데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머니 옆에 같이 않아 있기로 했다.

 

봉사단체 새댁들이 가져다주는 과일이며 정성들여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서 어린 초등학생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주변에 연세가 되신 어른들이 모두 계시는 가운데 않아서 가져다 주는 음식을 받아 먹어도 크게 불편하지가 않다. 내 스스로는 아직은 나이 들어 경로를 받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경로잔치가 끝날 때 까지 어머니 곁에 같이 있었다. 잔치가 끝난 후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가?

 

얼마 전 복잡한 지하철을 탔을때 경로석이 비어 있어 잠깐 자리에 앉았는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 자리가 크게 불편하지 않았었다. 그 좌석에 젊은 사람이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사람은 송곳방석 일테고 보는 사람도 어색하게 보였을 텐데 그러하지는 않았었다. 몇 해 전에 손주를 보았으니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내 손주에게만 할아버지라고 불리고 싶지 다른 사람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즐겨 듣고 싶지는 않다. 한번은 새댁들이 공원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나를 보고는 “저기 할아버지가 지나 가시네.“ 라고 할 때는 그 새댁이 그렇게 야속하게만 느껴지기도 했었다.

 

‘아하! 그렇구나. 그러니까 내 나이가 노인의 경계에 닿았구나.’

이래서 노인네가 되어가는구나.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는 세월 또한 부인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해외 이곳 저곳 자유여행을 하는 즐겨하는 나는 여행자 숙소에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다. 여행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대화에 끼어들어 그네들과 이야기를 할때면 서로가 공감 할 때도 많다. 나를 보고는 서울에 계시는 자기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해 본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자기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인데 생각은 자기네들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한다. 생각은 그렇다고 해도 얼굴에 나타나는 세월의 티는 벗길 수가 없다.

 

이제 까지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몇 번의 나이 경계는 있었다.

나는 20대 초에 교사를 시작했으니 요즈음에 비하면 굉장히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 했었다.

직장에서는 물론 어떤 모임에서든 내가 나이가 제일 적었다. 그떄는 운동회처럼 규모가 큰 학교 행사가 끝나면 그동안의 수고를 위로 한다고 회식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었다. 그때 한차례 돌아가는 막걸리 잔을 어른들로부터 받았을때 왜 그렇게도 어색하고 불편했던지 ...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청년에서 어른의 대열로 들 때의 경계였었나 보다.

요즘 같으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군복을 입은 20대 초반의 군인을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면 그게 참 어색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청년에서 아저씨가 되었나 하면 어느듯 장년을 지나 할아버지란 호칭을 들어가면서 세월을 맞았다.

  나는 지금도 걸음을 걸을때 팔을 등 뒤로 가져가지 않는다. 의식적으로라도 등 뒤로 가는 팔을 앞으로 내 보낸다. 등짐을 지고 걷는 나이든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이다.

나도 이제 온전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황제도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었는데 애통해 할 일은 아니다.

 

자신을 잘 가꾸지 않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는 아름답지는 못해도, 그렇다고 추하지는 않단다. 그리고 나이든 이는 노력하면 추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아름답지는 않다고 하드라.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나이 들어서도 영육 간에 추하지는 않게 살아야겠다.

이제 내 나이에 알맞게 내 몫을 감당하는 할아버지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