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40년 교직생활을 마무리 하다.

무숙자 2018. 9. 22. 19:43

2010,02,24

 

40년 교직생활을 마무리 하다.

 

22살에 교사로 임용되어 40년을 교단에 섰다가 20102월에 소임을 마쳤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그동안 나는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54년을 보낸 셈이다. 8세에 입학하여 14년 동안 배웠고, 그 뒤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니 54년 동안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한 셈이다. 내 생의 대부분이 학교생활이었다고 할 수 있다. 14년 동안 학교는 나를 깨우치게 하며 키웠고, 그 후 40년 동안 학교는 나의 일터이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시작할 무렵인 1970년에 병아리 교사가 되었다.

그때는 경제성장에 따라 일자리도 많았고 곁눈질을 할 수도 있던 때라서 변화가 적은 다람쥐 체 바퀴 도는듯한 학교생활이 지루하기도 했었다. 젊어서는 가능성이 컸던 만큼 교사로서의 직업에 크게 만족하지 못했었지만 나이가 들어 중년을 넘기니까 그때부터는 학교생활이 재미가 있었고 학생들도 더 가까이 눈에 다가 왔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중등학교로 전직하여 사립과 공립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을 고루 가르쳤으니 교사로서 나만큼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학교, 아이들, 학생들, 선생님, 학부모, 수업, 방학, 교실, 숙제, 성적, 시험, 진학, 보충수업, 상담, 생활지도등이 주 검색어 이었으나 내가 퇴직할 무렵 학교에서 사용되는 빈도 높은 단어로 왕따, 폭력, 컴퓨터, 게임중독 등의 용어가 추가 되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당면한 교육문제가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수 있다.

 

가르친 40년 동안을 줄잡아 생각해보니 연인원 10,000여명의 학생들과 1,500여명의 교직원과 인연을 맺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짧지 않은 교직생활 동안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만하면 개인적으로는 교직생활이 행복 했었다고 생각된다.

 

생명 없는 기계를 깎는 일도 산업역군으로 중요한 일이었을 터이지만, 나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돕는 참으로 귀한 일을 했으니 그 보람이 어찌 크지 않았겠는가?

공부(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가르치는 일에도 왕도가 없었다. 교사는 자기에게 맡겨진 학생들이 내 아들 딸이라고 생각하면 어떨 경우에 칭찬하고 어떻게 회초리를 들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적절한 충고로 잘 가르칠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잘 가르치지 못한 것에 자책을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고 있었더라면 시행착오 하지 않고 더 잘 가르쳤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가 절대적으로 살기가 어려운 70년대 초에 학용품을 다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챙기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 나도 어려웠지만 더 가난한 아이들을 더 보듬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더 예쁘게 보였다.

사람은 제각기 가진 소질과 특기가 있을 텐데 공부만을 강요했고 우수한 고등학교 진학을 부추긴 것이 부끄럽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인 고등학생들의 발달 과정을 보다 자세히 알고 좀 더 그들의 편에서 이해했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같으면 그래 네(학생) 생각도 들어보자라고 했을 텐데...

그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그것은 네가 잘 못 된 행동이야 라고 내(교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도 후회가 된다.

그때는 학생들을 설득 시키려고만 했었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칭찬에 인색했고 질책을 많이 했었다.

나이가 들면 지식은 많이 늘지 않아도 지혜는 생기는 법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 이다.

사람이 첫인상이 좋아야 하듯 끝 인상 또한 아름다워야 한다. 또한 뒷모습도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교직을 잘 마무리한 일은 그나마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요즘 들어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나보고 네가 제일 좋다. 네가 부럽다라고 한다. 그들이 현직에 있을 때 교사였던 나를 거들 떠 보지도 않던 회사의 중역들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나에게는 매달 공무원연금이 적절히 보장되니 안정된 노후가 부러워서 하는 소리일 것이다. 길고 짧은 것은 마지막에 재어 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많이 가르치기보다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일깨워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내 자식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자식은 옆집 아이 보다 조금 더 앞서야 한다는 부모의 욕심이 아이를 키우지 않고 만들어가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공부만 잘하면 이기적인 성격쯤은 탓하지 않는 현실이, 세월이 지나면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를 만드는지를 깊이 고민하는 지도자가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한국 사람은 개인은 무척 똑똑하고 우수하지만, 뭉쳐 놓으면 뭉쳐진 힘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단단한 모래가 바위가 되려면 굳게 하는 시멘트가 필요하듯 우리한국 사람에게는 뭉치게 하는 정신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사는 것은 말뿐이고 최선을 말하면서도, 최고만을 지향하는 무한 경쟁시대에 사는 우리는 언제쯤 일등과 꼴찌가 함께 행복해 하면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되려나?

 

모두들 교육은 백년대계이다라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십년소계도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는 아웃사이드에서 교육발전을 지켜 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