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농사 이치와 세상 이치가 다르지 않다.

무숙자 2018. 9. 22. 20:11

2012917

 

농사 이치와 세상 이치가 다르지 않다.

 

시골에서 벼농사를 시작한지 두 해 째이다. 지난해는 언제 논을 갈고 비료를 얼마나 흩어야 되는지, 모내기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농사를 해온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서 했지만 올해부터는 묻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몸으로는 2년차 농부이지만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많이 보아왔고 때로는 도왔기 때문에 왕초보는 아니었다. 그래서 쉽게 농사하는 일에 적응할 수 있었다.


농약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았더니 벼 심은 논에 묵은 풀이 심어놓은 벼 포기만큼 이나 많았다. 풀이 깊은 뿌리를 내리기 전에 건져내어야지 시기를 늦추어 버리면 몇 배나 되는 수고를 해야 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농사도 타이밍이 있다.

사흘 동안 논에 엎드려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 결과 이웃 논과 같은 모습으로 심은 벼가 잘 자라고 있었다.

 

모내기 직후에 연두색의 어린 벼 잎이 물속에 잠겨서 살 수는 있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 어느덧 녹색을 보이며 벼 줄기가 물위로 쑥 자랐다.

몇 주간을 더 지나면 짙은 녹색을 보이는 벼 한포기가 가지를 5개 정도 친다. 그래서 한 손길에 4포기를 심으니, 가지가 모두 20 여개나 되는 셈이다.

벼를 심은 들판은 모두 진한 녹색으로 바뀌었다. 이런 색깔을 자주 보는 시골 사람들은 시력이 쉽게 나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시골 사람들이 안경 착용 비율이 낮은 이유다.


벼를 심은 논은 대부분 물을 대어 놓지만 한번만큼은 논물을 완전히 빼어주고 일주일 정도 논바닥이 갈라지도록 말릴 때가 있다. 그래야만 그 후 벼가 더 튼튼히 자라고 열매를 잘 맺기 때문이다. 논물을 말려 수분 공급이 적어지면 벼는 살아남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벼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다. 그렇게 단련시킨 후에 다시 물을 대어 주면 벼는 전 보다 휠씬 튼실하게 자라게 된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때로는 고생도 필요 한가 본다.

잘 단련된 사람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이와 같은 이치라고 생각 된다. 이러하듯 자연의 모든 이치가 크게 다를지 않다.

그렇게 자란 벼는 이제 얼마 후면 이삭을 만들고 핀다. 벼가 모두 핀 후 (벼이삭이 끝을 고른다고 함) 40여일이 지나면 벼 베기를 할 수 있다.


큰 태풍 피해만 없다면 올해도 풍년이 예상되는데... 이래저래 농부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게 된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어디 농부뿐 일까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늘이 돕지 않고 잘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고 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난 후 하늘에 맡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벼도 꽃이 핀다. 이 무렵 들판에 나가면 구수한 벼꽃 내음이 은은하게 코끝에 전해온다. 농부만이 맡을 수 있는 냄새이다. 또 벼꽃이 핀지 대게 보름 정도 지나면 이삭을 만든다.

벼는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관심이 있는 농부는 자주 들판에 나가 보게 되고 논에 물은 마르지 않았는지 병충해는 없이 잘 자라는지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짧은 말속에 농부의 할 일을 잘 나타낸 것이다.

이삭이 익어갈 때 마다 벼는 주인에게 "주인님 오셨습니까?" 하면서 깊은 배꼽인사를 한다. “지난번 태풍을 잘 이겨내고 잘 자라 줘서 고마워" 농부는 이렇게 벼와 교감을 나눈다.


벼농사로 큰 소득은 되지 않지만 이처럼 벼 익어 가는 들판을 보는 순간만큼은 세상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농부는 기분이 흡족 하다. 농사를 하다가 느끼는 이러한 것들이 농부를 건강하게 만든다. 시골 생활에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가 이런 것 일게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돈의 가치에 비례해서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 해는 이달에만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이 3개나 지나가면서 이런 저런 피해를 주었다. 이웃 논에 심어진 벼는 어제 지나간 대형 태풍인 '산바'의 영향으로 벼가 많이 쓰러졌다. 그런데도 나의 벼는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무척 다행이다.

왜 일까?

이웃 논의 벼 주인이 수확을 더 많이 하려고 과욕을 부려서 비료를 지나치게 많이 뿌렸기 때문에 벼가 웃자라 줄기가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한 듯 가꿨기에 쓰러진 벼가 없었다. 추수하려면 쓰러진 벼는 작업하기도 힘들고 쭉정이가 많아서 수확량이 적고 쌀의 품질도 많이 떨어진다. 89할 정도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적당하다. 욕심을 부려서 10을 모두 채우려고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때가 많은 것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과욕을 부리면 안 된다.

 

내가 경험한 일 가운데 주식투자가 그러했다.

1990년 중반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주식에 한번쯤 투자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때였다. 자본자유화라는 호재로 주식투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고 주식시장은 활황이었다. 날만 새면 주가가 올라서 주식의 속성도 잘 모르면서 너도 나도 주식에 투자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투자자 모두가 이익을 얻은것은 아니었다. 적당히 올랐을 때 이익을 얻고 나온 사람은 돈을 늘렸지만 더 오를 것 같아서 팔지 않고 기다리다가 어느 날 내리기 시작해 이미 타이밍을 놓쳐 팔지 못하고 그러다가 늦게 팔아서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 경우도 많았다.

수익을 좀 더 내려다 손해를 본 경우이다. 10할을 채우려는 욕심보다 부족한 듯 8할을 생각하라고 조언을 할 때였다. 물론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농사도 이러하고 주식도 그러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과욕이 오히려 손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각해보면 많을 것이다.

 

이렇듯이 농사이치와 세상이치가 별로 다르지 않다. 다수확 욕심으로 과욕을 부리다보면 자칫 흉작이 될 수도 있다. 농사는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아주 좋은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