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어머니~~~

무숙자 2018. 9. 22. 20:37

2017, 11,30

 

어머니~~~

 

20171124일 새벽시간에

‘오~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9년동안을 시골집에서 혼자 사신 것이다.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사신분이라 텃밭에 채소를 가꾸시면서 고향 마을에서 노후를 보내시는 것이, 친구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사시는 도시생활보다 좋을 것 같아서 나하고 같이 살자고 강권하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어머니 하고는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나는 잠자리에 들려고 자리에 누울 때 마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추운데 연료를 아끼시느라 추운 방에서 주무시지는 않은지 늘 마음이 쓰이곤 하였다.

아내가 만들어준 반찬을 몇 가지 챙겨서 5일에 한번 씩은 들려서 하루 이틀은 어머니 곁에서 지내다 오는 것이 내가 직장에서 퇴직한 이후 몇 년 동안 지켜온 나의 보편적인 생활이었다.

 

98일에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딸과 함께 시골집에 가니까 그날따라 어머니께서 숨이 많이 답답하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몇 주 전부터 밥맛도 없고 숨이 와 이래 차노?’ 라고 하셨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연세가 얼마신데 젊은이와 같으시려고...’ 하면서 노쇠해지신 모습에 안타까워는 했지만 아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얼른 차에 태워서 소재지에 있는 신녕의원으로 갔다. 의사의 엑스레이 판독결과 큰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서 대구 영남대 병원 응급실로 옮겨갔다. 그래서 7일을 입원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본 결과가 폐암이라고 했다. 이럴 수가... 폐암은 다른 암과는 달라서 심해질 때까지 별 통증이 없기 때문에 발견되면 4기라고 한다. 지금의 의료수준으로는 폐암치료가 쉽지 않은데 연로하시기 때문에 항암 치료 등의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도 없다고 주치의가 이야기 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의논하여서 경주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은 집에서 모시기 싫어하는 불효자식들이 쉽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되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으나 내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와 간호사 간병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따뜻한 세끼 밥을 챙겨주는 곳이 요양병원이란 것을 알았다. 어느 아들딸이 이렇게 챙겨줄 수 있을까?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도 주일이면 시골 연정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 것을 즐겨하셨다. 90평생을 사시는 동안 굳은 생각을 바꾸시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여러 번 권면 하였더니 교회를 가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정교회에 교인으로 올 49일 첫 등록을 하셨다. 그 후로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만 해도 주일이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단장하여 목사님께서 운전하시는 교회 차량을 일찍부터 마을 어귀에 나오셔서 기다리셨다고 하셨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은 내가 한 시간 거리인 시골 연정교회까지 모시고 다녔다. 힘들게 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연정교회 가족 모두가 반겨 맞으셨고, 목사님의 간절하신 기도가 어머니께서 큰 위안을 받으셨다.


교회까지 오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은 더 가빠하셨고, 따라서 병원의료진들도 무리하게 외출을 하지 말라는 충고도 받기도 했지만 교회를 가셨다.

병상에서 세례문답에 답하시고 아멘으로 주님을 영접하시고 세례를 받으셨다. 그 후 몇 일 지나서 많이 못해진 컨디션이 잠시 좋아지는 듯 했지만, 밤중에 병원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간지 몇 시간 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눈을 감으셨다.

 

내 어머니는 참 복이 많으신 분이라고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야기 했지만 그렇게 공감하지는 않았는데 소천하신 후에 장례절차를 진행하면서 생각해보니 그 말을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90 평생을 사시면서 신체적으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시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셨다. 늦여름에 뿌려놓은 무와 배추에 물을 주고 싹을 틔운 후에야 병원에 입원하셨다.


연세든 분들이 흔히들 말하시는 것이 자는 잠결에 돌아가셨으면 복을 타신 것 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가족들이 얼마나 애통하고 황망해할 것인가? 그렇다고 오랫동안 병석에 계시면 긴병에 효자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머니께서는 두 달을 조금 더 병원에 계시면서 멀리 사는 딸들은 물론 가까운 일가친척들이 모두 병문안 와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나누셨다. 소천하시는 날 까지도 기력은 떨어졌어도 정신은 있으셨다.


정말로 더 귀한 것은 늦게나마 예수님을 영접하셔서 교회 다니시며 세례 받고 영혼이 천국으로 인도되셨으니 최고의 복을 받으신 것이다.

참으로 어머니는 복 많은 생을 사신 것이 분명하다.


이 세상에서 영생하는 사람은 없다. 임금도 황제도 영원히 살 수는 없는것이 분명하다.

온곳이 있으니 본향으로 되돌아 가는것이 사람의 일생이긴 하지만 이 세상에서 다시 뵐 수 없기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없다.

어머니!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  되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어머니 사랑 합니다!!!